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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일상

부산여행 2박3일 (태종대)

 

부산여행 두번째 날입니다.

둘쨋날 계획은 지난부산여행때 가보았던  해동용궁사를 다시한번 가보자해서 계획을 았었는데~

숙소와의 거리와 태종대를 못 가봤던 아쉬움에 태종대로 향합니다.

 

아침은 숙소에서 가까운 식당에서 돼지국밥을 먹어보고~

돼지국밥은 순대국일꺼라는 생각을 하고 맛 보았는데요

순대국 보다는 맑은 국물이였고 냄새도 전혀 없었으며, 고기는 내장쪽이 아닌 고기가 들어있었습니다.

부산을 돌아다니다 보면 여기도 저기도 돼지국밥 집이 많이 보이는데요~저희는 맛집이 아닌 단지 숙소에서 가까운 국밥집이라는 아침 일찍에도 문이 열여진 24시 국밥집으로 선택했는데도 so so 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맛집에서도 다시한번 먹어보고 싶네요~

아침을 든든히 먹고 커피한잔을 테이크아웃해서

부산씨티투어버스 탑승장

(저는 자갈치 시장역에서 레드버스를 후~영도대교앞에서 블루버스로 갈아탔습니다)으로 갑니다~

오늘은 하루종일 씨티투어버스를 타고 다닐예정입니다.

 

저희는 블루라인 태종대라인 버스입니다.

태종대에 도착하니, 어떤 아저씨가 모이세요 하더니 설명을 합니다.

가~만히 듣다보니 유람선 선박회사에서 나오신 영업하시는 분 ㅋ

자리를 떠서 위로 올라와 다누비열차를 예매 (표가격:어른 3000원, 중.고생 2000원 아이들 1500원) 합니다.

시간을 여유있게 가지고 오시는 분들은 천천히 산책삼아서 걸어도 좋을것 같습니다. (걸어서 1시간 소요)

저희는 아이들도 있고 많이 못 걷는 저질체력에 다누비열차를 타고 한바퀴 돌고 나오기로 했습니다.

(열차타면 20-25분소요)

예매를 하면 표에 몇회차에 타는지 쓰여있습니다.
전광판으로 표시되고 안내되므로 기다리시면 됩니다.

 

 

전망대에 있는 모자상

태종대에 대하여 홈페이지의 설명을 보면~

태종대에서 청명한 날에는 약 56㎞거리인 일본의 쓰시마섬까지 볼 수 있다.
태종대는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옛부터 시인과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이곳은 일제 때부터 오랫동안 군 요새지로 사용되었던 관계로 일반시민의 출입이 제한됐다. 그러다가 1967년 건설교통부가 유원지로 고시하였고, 뒤이어 1969년에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태종대 순환도로는 총연장 4.3㎞로 1970년부터 개설하기 시작하여 3년 만에 완공하였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고, 1974년에 태종대유원지 조성계획에 의거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였다. 2005년 11월 1일 국가 지정 문화재 명승 제 17호로 지정되었고, 2013년 11월 27일에는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정되었다.

(지질공원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3대 자연환경 보전 제도 [세계유산(World Heritage), 생물권보존지역(Biosphere Reserve), 지질공원(Geopark)] 중 하나로 지형·지질 유산과 함 께 생태·역사·문화적 가치를 지닌 지역을 보전함과 동시에 연구·교육 등에 활용하고, 이를 대상으로 지질관광(지오투어리즘, Geotourism: 천연의 지형·지질 유산을 활용한 관광)을 운 영함으로써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태종대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태종무열왕이 활을 쏘기 위하여 이곳을 찾았다는 사실에서 유래된다. 또한, 태종이 일본을 토벌하기 위해서 태종대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정확하게 검증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태종대가 고대 사회부터 지역적으로 매우 중요했다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있다. '태종대(太宗臺)'라는 이름에 관한 내력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래부지』(1740년)에 의하면, 신라(新羅) 제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 이곳에 와서 활을 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와 이곳 이름을 '태종대'라고 붙였다는 것이다.

또한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目)』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동래(東萊)의 절영도(絶影島)에 태종대(太宗臺)가 있는데, 속전(俗傳)하기를 '신라의 태종(太宗)이 대마도(對馬島)를 토벌할 때 주필(임금이 거둥하는 중간에 어가를 멈추고 머무르거나 묵던 일) 하였던 곳' 이라 한다. 신라는 조그마한 구석진 땅이로되, 육지로는 능히 고구려와 백제에 대적하고, 바다로는 왜국을 정벌하였으니, 그 병력의 웅대함이 삼국을 통일할 만한 것임을 생각할 수 있겠다. 후세에 해동의 온 땅덩어리가 섬나라 오랑캐들에게 곤욕을 당한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위정자(爲政者)들은 의당 그 방어책을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이처럼 안정복은 신라의 태종이 대마도를 칠 때 태종대에서 머물렀다는 설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조선의 태종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조선 제3대 태종(太宗)이 그 치세 말년인 1419년에 큰 가뭄이 들자, 그 해 5월에 태종대를 찾아 비 내리기를 빌어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그로부터 음력 5월 초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太宗雨)」라고 부르게 됐고, 가뭄을 만나면 비 오기를 이곳에서 빈다고 했다. 『동래부지』에서 말한 대로 가뭄이 닥치면 태종대에서 비 내리기를 빌었는데, 동래 지방에 가뭄이 닥치면 동래부사는 태종대에서 기우제를 올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사묘조」에 절영도 신사에 관한 다음의 기록이 보인다. "돌로 단을 만들었으며 옛날에는 비를 빌어 징험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 시기가 중종 25년(1530년)이니, 그 책이 편찬되기 이전까지 영도 태종대에 신사가 존재하고 있었음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동래부읍지』 「고적조」에 태종대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동래부 남쪽 30리의 절영도 동쪽에 있다. 바닷물이 둘레를 돌고 서쪽으로 한 석교가 있어 간신히 사람이 지날 수 있다."
신라의 태종이 대마도를 칠 때 태종대에서 머물렀다거나, 태종무열왕이 활을 쏘아 포장과녁을 맞힌 곳이라 하여 태종대라 하게 되었다거나, 조선 태종이 치세 말년에 큰 가뭄이 들자 비 내리기를 빌어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는 모두 태종대가 국가 안녕을 비는 기원의 성소였음을 말해준다.


태종대는 영도뿐만 아니라 부산을 대표하는 해안절경을 간직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명소가 함께 있는 천혜의 관광지이다. 이곳은 그야말로 난대에서 온대로 이어지는 다양한 식생을 지닌 울창한 숲과 해식절벽, 반딧불이, 공룡발자국, 보라매 서식지 등 풍부한 자연생태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명승지이다. 태종대는 이처럼 천혜의 자연생태자원일 뿐만 아니라, 신라의 태종무열왕과 조선의 태종이 관계된 설화를 지니고 있는 공간으로 역사문화의 스토리가 복합되어 있는 부산을 대표하는 명소이다.

 

 

다누비열차를 타고 금방 전망대에 하차합니다.

전망대를 한바퀴 돌며 주변경관 바다와 어우러진 암석들과 나무들을 감상합니다.

태종대에서 제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동백꽃을 보았습니다.

 

요즘 제주도에도 동백꽃이 한창 이라는 소식을 듣고 부산도 따뜻하니깐 동백을 볼수 있을까 동백꽃을 볼수 있을까 했는데 태종대 입구에 예쁘게 피어있었습니다.

마치 조화처럼 활짝 핀것도~

여러나무 사이에 피어 있는 돌연변이? 꽃도 신기하며 예쁩니다^^